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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기로운 감옥생활, 현실에 기반한 낙관주의자
#1 인민노련 : “그렇소, 우리는 사회주의자요!”

인민노련은 인천지역을 중심으로 1987년 6월 26일 결성된 노동운동조직으로, 당시 현장노동자들을 기반으로 한 최대 전국 정치조직이었다.
인민노련 결성을 이끈 노회찬, 최봉근, 황광우 등은 1987년 1월 15일 ‘살인.고문.강간정권 타도투쟁위원회<약칭 타투>’를 결성하고, 그해 2월 7일 박종철 추모집회 때는 ‘타투’라는 이름으로 부천역 광장에서 최초의 대중투쟁을 성공적으로 이끌며 6월민주항쟁을 거쳐 인민노련으로 발전하게 되었다.

인민노련은 초기에 <노동자의 길>, <정세와 실천> 등 두 개의 기관지를 발간하였다. <정세와 실천>은 노동운동, 민중운동의 주요 이론적, 전술적 쟁점을 다룬 A4용지 크기의 책자였으며, <노동자의 길>은 파업현장, 노동자들의 생활 등을 담아 매주 발간했던 노동자 대중신문으로 타블로이드판이었다.
이 두 기관지는 88년 여름 회의에서 전면 개편되어, 단순한 ‘대중신문’이 아니라 ‘선진노동자를 위한 신문’을 발간할 것을 결정하고, <정세와 실천>을 폐간하고 <노동자의 길>을 A4용지 1/2 크기의 소책자로 발간했다. 개편된 <노동자의 길>은 민중운동, 노동운동에 대한 당면 실천적 지침뿐만 아니라 전국 각 지역 노동운동의 동향을 전달했다.

또한 ‘선진노동자들의 계급적, 정치적 각성을 촉구’하고 매춘, 주택, 마약 등 현실에서 나타나는 여러 문제들에 대한 근본 원인과 해석을 통해 ‘과학적 사회주의에 대해 쉽고 정확하게 이해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역할을 자임했다. <노동자의 길>은 학습모임, 독서회, 시사토론회 등 노동자 조직사업과 결합해 집필, 제작, 배포되었다.

전국 조직 준비 차원에서 ‘전국적 정치신문’을 지향하며 발행한 <사회주의자>는 4호까지 발행했으나 인민노련 사건이 터지면서 중단되었다.

치안본부는 1989년 10월 18일과 19일 이틀에 걸쳐 오동렬(29·서울대 철학 졸), 윤철호 등 인민노련 관계자 17명 전원 구속영장을 받아 구속했다. 12월 23일에는 노회찬 등 3명이 검거되었다.
(※ 인천지역민주노동자연맹 초기에는 ‘인노련’이라는 약칭으로 불렸는데 양승조 등이 이끌던 과거의 ‘인노련’과 혼동을 주는 바람에 점차 ‘인민노련’으로 불리게 된다.)

구속된 인민노련 조직원들은 법정에서 자신들의 사상을 숨김없이 드러냈다. 윤철호, 오동렬 등 중앙위원들은 당시 법정에서 ‘그렇소 우리는 사회주의자요’라는 최후진술을 남겼다. 이 최후 진술을 모아서 낸 책이 1990년 일빛출판사에서 발행된 <그렇소, 우리는 사회주의자요!>라는 책이다.

노회찬의 최후진술은 <선진노동자의 이름으로>에 실렸다. <선진노동자의 이름으로>의 부제는 ‘노동계급의 정치세력화를 향한 민중민주주의 진영의 사상과 실천’이다. 이 책은 전위조직을 지향했던 비합법 노동자 정치조직 가운데 PD진영을 대표할만한 4개 조직의 관련자들이 구속 이후 쓴 법정투쟁기록들을 모아놓은 것이다.
‘노동계급’, ‘민족통일민주주의노동자동맹(삼민동맹)’, ‘안양PD그룹’, ‘인천지역민주노동자연맹(인민노련)’ 관련자들이 자신과 조직의 이념과 노선 그리고 그들이 무엇을 위해 노동운동을 하는지를 밝히고 있다.

노회찬은 ‘반국가단체인 북한을 이롭게 하는 북한의 선전활동과 그 궤를 같이 하고 있는 이적단체 인민노련’의 ‘이적표현물소지죄’,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1심에서 징역 2년 6월에 자격정지 3년형을 선고받았다.

판결문 보기<판결요지>
가. 국가보안법상 반국가단체라 함은 정부를 참칭하거나 국가를 변란할 것을 목적으로 하는 국내외의 집단을 말하는 것인바, 북한은 현 군사분계선 이북의 대한민국 영토를 강점하여 대한민국의 통치권의 행사를 방해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대한민국을 전복하기 위하여 무력도발행위를 계속 하고 선전선동으로 대한민국 내부로부터의 붕괴를 지속적으로 획책하고 있으므로 국가보안법상 반국가단체에 해당된다.

나. 우리나라의 경제가 미국에 종속되어 있고 정치권력이 자본과 결탁하여 노동자, 농민 등 기층 민중을 수탈하고 있다는 현실인식 아래 사회주의혁명을 통해 사회주의국가를 건설함으로써 통일을 이룬다는 통일이념을 가지고, 마르크스 레닌주의 사상을 노동자들에게 고취시켜 투쟁과 혁명을 감당할 노동자 정당을 결성할 목적으로 결성한 단체로서 산하에 중앙집행위원회, 지구위원회, 분회 등의 기구를 둔 인천지역민주노동자연맹(약칭 “인노련”)의 활동은 대한민국의 존립과 안전을 위태롭게 하거나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에 위해를 줄 뿐만 아니라, 민족해방 인민민주주의 혁명을 완수하여 남한 단독으로 사회주의국가를 건설한 다음 북한과 통일을 이룬다는 북한의 선전 선동활동과 그 궤를 같이하고 있어 반국가단체인 북한을 이롭게 하는 것이므로 “인노련”은 국가 보안법 제7조 제3항 소정의 이적단체에 해당한다.

다. 국가보안법 제7조 제5항의 이적표현물소지죄는 객관적으로 반국가단체나 그 구성원을 이롭게 하는 내용의 표현물을 그와 같은 사실을 인식하고 소지한 경우에 성립되는 것이고 이롭게 할 목적이 있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

노회찬은 최후진술서에서 “국가보안법은 개폐되어야 할 대표적인 반민주 악법으로 이 법에 의한 그간의 행적은 청산되어야 할 대표적인 과거..”라고 했다. 공안정국이었던 당시, 민주화운동을 탄압하는 데에 쓰였던 국가보안법으로 인해 인민노련은 이적단체로 규정되고 노회찬은 구속될 수밖에 없었다.

1989년 12월 23일 체포, 12월 25일 크리스마스 날 구속된 노회찬은 1990년 1월 11일 서울구치소에 수감(수인번호 272번) 되었고, 그해 8월 8일에는 안양교도소로 이감(수인번호 5009번)되었다가, 11 월 5일 청주교도소(수인번호 336번)로 이감되어 만기 출소까지 청주교도소에서 생활하였다.

노회찬은 교도소 생활 동안 가족들과 지인들에게 많은 편지를 썼다. 부모님과 동생에게 부친 편지의 기록들만 추려 보더라도 의외의 면을 많이 볼 수 있다. 편지를 통해 유추해본 그의 ‘슬기로운 감옥생활’은 ‘이적단체’ 핵심 활동가이자 국가보안법 사범의 생활이라고 예상되는 것보다 훨씬 낙천적이고 긍정적이다. 감옥이라는 주어진 현실을 받아들이면서도 희망을 잃지 않았기 때문이다.

#2 꽃과 식물들

<자연학습도감>을 어린 시절 좋아했던 책으로 꼽을 정도로, 꽃과 식물들을 좋아했던 때문일까? 노회찬의 편지에는 편지에는 꽃과 식물을 가꾸는 일상이 기록되어 있다.

1991년 2월 26일
저는 날이 따뜻해지면 운동장 한 구석에라도 심을 요량으로 해바라기 씨앗을 몇 개 구해 놓았습니다. 내일의 희망이 있는 사람에겐 오늘의 고통이 이미 고통이 아니죠. 더욱이 용기 있는 사람에겐 모진 시련이 오히려 걸찍한 거름으로 변해버리지요. 공기 맑은 겨울별장에서 휴양생활을 하고 있는 저로서 번잡한 도시의 온돌방을 부러워한 적은 없습니다. 반대로 저는 이 귀한 휴가의 시간 동안 미래를 위해 땀흘려 노력하지 않고 편히 쉬고 즐기는 것만으로 세월을 보내지 않도록 항상 긴장을 늦추지 않고 있습니다. 옛날 중학교 졸업식 직후 초량집으로 찾아오신 오윤갑 선생님께서 전화위복이 될 수 있다고 말씀하셨는데 그대로 되었지요. 저는 이번에도 전화위복을 확신하고 있으며 또 그렇게 만들 자신이 있습니다.
며칠 전 구두로 상고심 기각 소식을 들었습니다. 판결문도 곧 도착할 것입니다. 요즘의 수서파동에서 다시 백일하에 드러났듯이 총체적인 부패구조의 일각으로부터 제가 재판을 받은 셈인데 그 결과가 이리 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라 하겠습니다. 물론 四審은 역사가 내릴 것입니다.
언 땅이 녹고 해바라기 씨앗을 심을 때쯤이면 운동장 주변 화단에서 움돋는 갖가지 새싹들에 관해 드릴 소식이 많아질 것 같습니다.

1991년 3월 13일
공부하는 틈틈이 가벼운 읽을거리로 문예물로 읽곤 하는데 요즘 쓰여진 소설들은 마치 설익은 과일 같은 맛이라 최근엔 소설보다도 자서전 등의 實話를 더 즐겨 찾았고 셰익스피어 같은 古典은 여전히 읽고 배울 것이 많겠다 싶어서 부탁드렸습니다.
… 어제 오랜만에 담요를 건조시키기 위해 앞뜰에 나갔더니 줄이어 심어진 개나리는 아직 파란 움이 트이지 않는 상태였습니다. 그러나 밖에선 눈에 보이지 않는 그 개나리의 내부에선 이미 생명의 계절을 맞는 왕성한 활동이 전개되고 있었을 것입니다… 다시 개나리, 진달래에 이어 푸른 신록이 세상을 물들일 날들이 다가오고 있습니다.

1991년 4월 9일
엊그제부터 바깥의 개나리가 활짝 피었습니다. 산수유도 이미 만개하였고 살구꽃과 복숭아꽃이 그 다음 차례를 기다리고 있지요. 오늘 아버님께서 부쳐주신 애창명가명곡집을 받았습 니다. 악보를 뒤적이다보니 초량집에서 피리 불던 일이 생각나더군요. 여러 가지 배려에 절로 고개가 숙여집니다. 정서적으로도 윤택한 생활을 위해 아버님 어머님을 생각하며 열심히 노래 배우고 또 부르겠습니다. 여기서도 매일 한두 시간씩 음악방송이 나오지만 그 대부분이 요란한 대중가요라 별로 흥미있게 듣진 못합니다. 그러나 가끔 라디오방송에서 「노래를 찾는 사람들」이 부르는 “솔아 솔아 푸르른 솔아” 같은 노래나, 제 결혼식 때 피아노 반주곡으로 연주되었던 “그날이 오면” 같은 노래를 들을 때면 참으로 가슴이 트이면서 그리운 사람들과 함께 이 음악을 들었으면 하는 생각도 일어나지요. 음악을 즐겨 들으시는 아버님과 어머님께서 이 「노‧찾‧사(“노래를 찾는 사람들”을 줄여 흔히 이렇게 부르는 것 같습니다.)」가 부른 노래 음반을 소개해 드리고 싶습니다. 10만장 이상 팔렸다는 좋은 곡들이지요.

1991년 5월 11일
꽃이 열매를 남기는 것은 당연한 이치이지만 특히 요즘 같은 계절에는 생명의 소멸이 또 다른 생명의 창조로 이어지는 상징적 例를 보는 것 같아 감회가 새롭기만 합니다. 살구는 벌써 홍조를 띠기 시작하였고 복숭아와 딸기도 빠르게 커가고 있습니다.
다섯 명의 죽음을 보면서도 같은 생각입니다. 그렇게 화려한 젊음들이 꽃처럼 피고 졌지만 그들은 그냥 가버린 것이 아니라 크고 알찬 열매들을 우리 속에 남기고 갔습니다. 민주주의라는 나무는 피를 먹고 자란다는 말도 있지만 이들의 죽음은 오히려 많은 사람들에게 끝까지 살아 싸우고 싸워서 이길 것을 강력히 부탁하는 것 같습니다. 이런 와중에서 시대의 흐름과 민중들의 바램을 따라가지 못해 낙오하는 무리도 눈에 띄는군요. 최근 물의를 빚은 김동길이나 김지하의 경우는 단순히 낙오하는 정도가 아니라 아예 저편으로 넘어가 총구를 거꾸로 겨누는 상태이지요. 마치 굴러가는 수레바퀴를 멈추려는 사마귀의 허망한 노력을 보는 것 같습니다.
… 국가보안법 날치기 통과 소식과 함께 사면 이야기도 나오는 것 같군요. 그러나 저는 며칠 내로 해바라기 씨를 심을 예정입니다. 학습계획도 다시 점검할 계획입니다.
… 서로가 좋은 점만 보려고 노력할 때 진짜 서로에게 좋은 일만 일어난다는 것이 저의 소박한 믿음이기도 합니다.
… 그리고 李貞浩 선생님께 연락이 가능하다면 책 한 권을 부탁드리고 싶습니다. 일단 “고르바쵸프의 저서”라고만 말씀해 주십시오. 그 나라는 책 구입하기도 쉽지 않다고 하니 (절판된 경우가 많아서랍니다) 꼭 그 책이 없으면 어학연습용이니 다른 책이라도 아무거나 한 권 있었으면 합니다.

1991년 6월 2일
보슬비가 간간이 내리던 어제 오후엔 깻잎을 몇 십 포기 뜰 앞에 심었습니다. 보고 냄새만 맡아도 군침이 도는 식물입니다. 지난번에 해바라기 씨앗을 심을 때 장난삼아 메주콩 한 알 을 심었는데 그새 튼튼한 새싹을 틔우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어제는 가지고 있던 나머지 10알 정도를 모두 심었습니다. 콩 심은 데 콩 난다는 말이 새삼 깊은 뜻을 갖고 마음에 다가왔었지요.
평소에도 그랬지만 한결 시간의 소중함을 느끼게 됩니다. 요즘엔 특히 남은 시간들을 어떻게 유익하게 활용할 것인가 하는 문제에 몰두하고 있습니다. 몇 차례 말씀드렸지만 저의 처지를 “좋은 시간을 박탈당한 상태”로 보지 않습니다. 그 반대로, 바깥에선 가질 수 없고 이 처럼 격리되었기 때문에 가질 수 있는 특수한 시간 즉 학습하고 사색하고 체력을 단련하기 위한 전지훈련의 시간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술을 마신지도 오래되었지만 사실 술맛을 잊어버려서인지 취하고 싶은 생각조차 일지 않습 니다. 술과 담배에 찌들지 않은 현재의 상태가 훨씬 좋은 것 같습니다. 이제 半 중이 된 것 같지요.

1991년 7월 5일
메주콩은 초기에 기세있게 자랐으나 그만 잡초로 오인되어 화단 정리하는 사람들의 손에 ‘정리’되었습니다. 人災가 天災보다 더 위협적이긴 어디나 마찬가지일 듯 싶습니다. 해바라기와 들깨는 비옥한 토양에 심어진 것과 척박한 토양에 심어진 것의 크기가 두 배 정도 차이가 나고 있습니다. 성장조건도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것 같습니다. 화학비료를 약간 주어 보았지만 척박한 토양을 크게 개선시키진 못하였습니다. 그러나 깻잎은 벌써부터 저희들의 식욕을 충족시켜주고 있으며 올 가을엔 다시 해바라기 씨를 수확할 수 있을 것입니다.
… 이(정호) 선생님이 보내주신 책은 톨스토이의 부활, 뚜르게네프 소설집 그리고 동화책과 시집 각 1권씩이었습니다. 여기서 다 읽고 나갈 작정입니다.

1991년 7월 30일
오랜만에 인천 처형에게서 편지가 왔습니다. 면회온 처의 말을 들으니, 둘째 동서(인천)가 다니는 인천제철에서 가족백일장이 있었는데 둘째 처형이 거기에 응모하여 특선을 하였답니다. 그래서 부부동반으로 제주도 여행하는 포상휴가까지 받았다는군요. 한여름의 시원한 소식입니다. 아울러 어머님께서 그런데 응모하면 아마 세계일주 여행賞 정도는 틀림없이 받았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 가보지도 못한 저지만 생각하면 가슴이 메이고 달려가고픈 충동을 느끼게 됩니다. 근 8개월간 교착상태에 빠져있긴 하지만 불가침 선언과 병행하여 3通(통신, 통행, 통상) 선언까지 수용하겠다고 하니 1년 이내에 교류 면에서도 큰 진전이 있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세상에 눈을 뜨면서부터 가졌던 꿈이지만 아버님 어머님 모시고 고향 땅을 방문하고 금강산도 구경가는 그날이 반드시 올 것이라 믿습니다.
어느새 입추가 눈앞에 다가왔습니다. 더위가 좀 더 남았지만 마음은 이미 가을, 겨울로 달려갑니다. 장마비를 맞으며 해바라기의 키가 1m를 넘어섰습니다. 다알리아는 은퇴하였고 은행나무는 여전합니다. 사루비아를 갖다 놓을까 아니면 좀 더 기다렸다 국화를 갖다 놓을까 생각 중입니다.

어린 시절부터 이어오는 식물에 대한 애정은 뜻밖의 인연을 만들어내기도 했다. 노회찬의 부인 김지선과 동명이인이기도 한 지오북 출판사의 김지선 편집자가 선물한 <광릉 숲에서 보내는 편지>를 추천하며 “숲은 미래다. 숲은 관념이 아니라 과학이다. 숲이 병들면 미래가 병드는 것이다. 숲에서 지낸 7시간. 2004년 들어서서 가장 좋은 하루를 보냈다”라고 했다.

#3 운동

횟수는 많지 않지만 운동으로 체력관리를 하는 일상도 살펴볼 수 있다.

1990년 5월 26일
하루 벌어 하루 먹는 일이 평생의 운명처럼 되어 있는 수많은 사람들을 생각할 때, 비록 신체적 자유가 구속되어 있다고는 하나 이곳에서 편안히 독서하고 운동하며 또 일주일에 한 두번쯤 상추쌈까지 먹을 수 있는 저의 처지는 여전히 혜택받는 계층에 속한다 할 것입니다.

1990년 6월 30일
비록 갇혀 지내지만 독서와 운동 그리고 사색을 하는 데는 오히려 바깥보다 나은 환경입니다. 정신적 건강과 육체적 건강을 유지하고 발전시키는 데 좋은 기회이기도 합니다. 따라서 얼마나 빨리 나가는가 하는 문제보다도 이곳에 있는 동안에 얼마나 시간을 유익하게 쓰는가 하는 문제가 미래에 보다 큰 영향을 미치게 될 것입니다. … 아버님 어머님께서 건강하시고 밝고 명랑하게 생활하시는 것은 현재 저의 유일한 소원이자 저에게 힘을 주는 일이기도 합니다.

1990년 11월 16일
징역을 살지 않았으면 평생 테니스 한번 해보지 않았을 터인데 이곳에 들어와 배구, 농구에 이어 테니스까지 즐기게 되어 출세하였다고 사람들에게 얘기했습니다. … 방안에서는 요가와 단전호흡, 운동장에선 테니스와 뜀뛰기를 함으로써 체력관리를 할까 합니다.
… 애들이 커가고 식구가 늘어 시끌벅적한 모습은 생각만 해도 즐거운 일입니다. … 겨울 준비는 착실히 하고 있으니 걱정하지 마십시오. 얼마나 추울지 오히려 기다리는 심정입니다. 오직 신체의 단련과 유유자적한 마음으로 학습에 정진할 것입니다.

1990년 11월 26일
학습과 사색 그리고 운동은 저의 이곳 생활의 전부이며 이후의 생활에도 유익한 기여를 하리라 생각합니다. 오직 아버님 어머님과 주위 분들에게 심려를 끼쳐드리고 있다는 사실만이 마음의 짐이 될 뿐 편안하고 만족한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추위가 다가오고 있지만 겨울을 뒤이을 봄이 보입니다. 다가오는 희망찬 내일을 위해서도 내내 건강하시길 빕니다.

1991년 2월 26일
며칠 전엔 녹는 눈으로 운동장 바닥이 질어지는 것을 막기 위해 한쪽으로 밀어놓은 눈을 다시 치우는 ‘운동’을 하였습니다. 비싼 요금을 지불해가며 호텔 사우나 같은 데서 억지로 땀을 빼는 사람들도 많이 있기에 테니스, 배드민턴, 눈 치우기 등 여러 종류의 운동으로 땀을 흘린 뒤마다 뜨거운 결명자 차를 마시면서 우리는 ‘또 돈 벌었다’며 웃습니다.

1992년 3월 25일
그간의 징역생활을 여유있고 안정된 마음으로, 열심히 공부하고 열심히 운동하면서 지낼 수 있었던 것은, 단 한순간도 후회하거나 신세를 한탄하는 일이 없이 꿋꿋하고 낙천적으로 보낼 수 있었던 것은 물론 가족.친지들의 따뜻한 사랑과 격려도 도움이 되었지만 그 바탕에는 무엇보다도 제가 한 일에 대한 확신, 그 정당함에 대한 자부심 이런 것들이 깔려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남들은 하루를 살아도 지옥을 경험한 것처럼 싫어하는 징역살이 를 웃으며 보낼 수 있었던 것입니다.

이 책들은 노회찬이 감옥에서 읽었던 단전호흡 관련 책들이다.
이때부터의 관심이었는지, 어린 시절 구봉산을 뛰어다니며 운동신경을 키워온 것이 바탕이 되었는지, 노회찬의 서재에는 운동과 관련한 책들도 꽤 있다. 단전호흡책이나 요가책 등이다.

#4 책

‘독서광’인 노회찬, 감옥에서는 어땠을까?

1990년 12월 3일
건이는 면회 오는 대신 「흑해의 파도 上, 下」(동녘출판사)란 소설책을 보내줬으면 합니다.
어느덧 1년이란 세월이 흘러가고 있지만 세월이 빨리 흘러 어서 나갔으면 하는 생각은 없습니다. 오히려 정반대로 이 귀중한, 금싸라기 같은 시간이기 때문에 세월이 더 천천히 지나갔으면 하는 심정입니다.

1991년 3월 13일
공부하는 틈틈이 가벼운 읽을거리로 문예물로 읽곤 하는데 요즘 쓰여진 소설들은 마치 설익은 과일 같은 맛이라 최근엔 소설보다도 자서전 등의 實話를 더 즐겨 찾았고 셰익스피어 같은 古典은 여전히 읽고 배울 것이 많겠다 싶어서 부탁드렸습니다.
… 어제 오랜만에 담요를 건조시키기 위해 앞뜰에 나갔더니 줄이어 심어진 개나리는 아직 파란 움이 트이지 않는 상태였습니다. 그러나 밖에선 눈에 보이지 않는 그 개나리의 내부에선 이미 생명의 계절을 맞는 왕성한 활동이 전개되고 있었을 것입니다. … 다시 개나리, 진달래에 이어 푸른 신록이 세상을 물들일 날들이 다가오고 있습니다.

1991년 7월 9일 동생 회건에게 보낸 편지
잘 지냈는가? 먼저 생일을 축하한다.
… 이곳에 와서 처음 한동안은 소설류는 전혀 읽히지 않았는데 지난번 아버님이 보내주신 셰익스피어를 읽은 다음부터는 읽을만한 소설책을 따로 선정하여 꾸준히 읽어나가고 있다. “흑해의 파도”를 읽은 다음 지금은 “사람아 아! 사람아”라는 1980년 발표작인 중국소설을 읽고 있다. 꽤 흥미있는 내용이라 단숨에 180p를 읽어냈다. 징역이라 하지만 시간과의 투쟁은 여기서도 마찬가지이다. 특히 재미있는 소설책은 집어들 때마다 소설읽기에 많은 시간을 할애하지 않기 위한 고난의 투쟁을 벌이게 된다. 너는 요즘 무엇을 읽고 있나? 나는 네가 이같은 질문에 항상 대답할 수 있는 상태에 있길 바란다.
우리의 생활은 여러 가지 다양한 활동으로 가득차 있지만 그중에서 우선 건강과 독서에 관한 한 우리는 최소한 수개월치의 계획을 갖고 있어야 할 것이다. 어쩌다 시간이 날 때 혹은 어쩌다 좋은 책을 손에 쥐게 되었을 때만 독서를 해서는 안 된다. 계획과 목표가 있어야 하며 동시에 늘 “독서하고 있는 상태”가 지속되어야 한다.

1991년 10월 30일 편지
얼마 전에 신간도서목록을 살피다가 소련여행 안내서가 있어서 한 권 구입해볼까 하는 생각도 들었으나 결국 ‘자제’한 적이 있었는데 놀랍게도 며칠 전 바로 그 책을 한 친구가 보내주었습니다. 중앙일보사에서 나온 것으로 책 이름은 “세계를 간다 21 소련”입니다… 하루저녁에 600여 페이지에 달하는 이 책을 다 읽어가며 소련 여행을 하였습니다. 요꼬하마에서 비행기로 하바로프스크라는 극동 도시로 가서 거기서 시베리아 횡단열차를 타고 5박6일만에 모스코바로 갔으며 또 레닌그라드를 거쳐 중앙아시아의 여러 아름다운 도시들까지 구경하였습니다. 러시안 수프는 물론 보드까도 실컷 마셨지요. 단순한 여행안내서가 아니라 소련의 여러 풍물과 관습.제도까지 이해할 수 있도록 되어 있어서 편리했습니다. 이 여행안내서 시리즈는 나라별로 모두 30권까지 있습니다. 그중에서 중국은 제1권입니다. 아버님께도 권해드리고 싶습니다. … 내일 지구가 망한다 하더라도 오늘 사과나무를 심겠노라 라는 유명한 말이 있듯이 여유를 갖고 묵묵히 살아가는 것이 올바르게 살아가는 지혜일 것입니다.

1991년 11월 29일 동생 회건에게 보낸 편지
우리가 主食으로 늘 먹는 쌀밥처럼 특별한 활동이나 취미로서가 아니라 세수와 양치질과 같은 일상생활로서 독서와 사색을 계속 하길 권하고 싶네. 재미있는 것을 읽어내는 오락이 아니라 ‘살아있는 인간’이라는 증거로서 ‘思考’를 위해.
그지없이 복잡다단하고 흥미진진한 인간들의 삶과 그 역사에 파묻혀서인지 가공된, 만들어진 삶의 기록인 소설이 참으로 잘 읽히지 않고 있네만 조정래의 태백산맥과 김학철의 격정시대(풀빛)는 사고의 깊이를 더해주는 좋은 책으로 읽었고 또 권하고 싶네. 요즘 마찬가지의 가벼운 책으로 읽고 있는 ‘조국’(김진계 著, 현장문학사)도 새삼 우리의 역사에 대한 참신한 안목을 느끼게 하는 ‘도움이 되는 책’인 것 같네. 선덕 아범과 제수씨 그리고 누님께도 이 책들을 권하고 싶네.

러시아어책부터 소설책까지 다양한 책들과 함께, 감옥의 시간이 천천히 지나갔 으면 하는 마음을 내비칠 정도로 책과 함께 하는 귀한 시간들이었다. 감옥에서 받아본 책이 최소 149권. 노회찬의 감옥 반입 서적은 ‘노회찬의 서재 봄’ 특별서가에 따로 배치하고 있다.

#5 여치와 집게사슴벌레

노회찬의 감옥 편지에는 다양한 곤충들과 함께 한 일상도 실려 있다.

1991년 8월 14일
어제 밤엔 여치가 한 마리 들어와서 복숭아를 한입 베어 주었더니 좋아라고 먹어대었습니다. 그러자 잠시 후엔 매미 한 마리가 문을 열어달라는듯 창문에 와 부딪히기에 이 손님까지 들어오게 하니 불청객들로 방안이 꽉찬 느낌이었지요. 결국 어제 밤엔 이 손님들까지 1평 남짓한 방에서 징역을 살고 아침에 나갔습니다.

1991년 8월 16일 동생 회건에게
흔히 모기의 극성이 한여름의 고통을 더해 주는 경우가 많지만 이곳에선 오히려 모기를 구경하기도 힘들 정도이다. 대신 오랜만에 대하는 매미, 나비, 잠자리, 메뚜기 등의 곤충들이 그 옛날 소년시절의 구봉산을 생각나게 하면서 한 여름의 정취를 더욱 돋구어주고 있다. 이 곳에서도 농약을 제법 사용하는 원예반 뜰에선 메뚜기 종류를 보기 힘든 반면 농약의 혜택을 제대로 받지 못하는 舍棟 주변의 화단에선 몽치미(!), 베짱이, 방아깨비, 사마귀 등의 곤충을 심심찮게 보게된다. 이들 곤충 중에서 요즘 우리의 신경을 종종 곤두서게 만드는 것은 매미이다. 이곳에선 유지매미는 보기 어렵고 참매미와 이 지방에서 씨룩매미라고 부르는 것(가능 하면 ‘원색자연학습도감’을 찾아 이름을 알려다오. 참매미와 외관이 비슷하나 크기가 작고-약 3~4cm-참매미보다 연녹색이 더 가미되었음) 등이 주종이다. 특히 씨룩매미는 울음소리가 요란하여 마치 피를 토하며 우는 새소리 같은데 며칠 전엔 이들이 세 마리나 창문틈 사이로 복도로 난입하여 한여름 밤의 소음 공해를 발생시키더니 결국 에프킬러까지 동원되는 비극을 만들어내고 만 적이 있다. 방 창문의 모기망에도 하룻밤에 몇 마리씩 돌진하곤 하는데 지난 번에 한 마리를 재워보낸 후론 창문을 열어주지 않고 있다. 땅 속에서 5년 이상의 애벌레 생 활을 보내고 성충이 된지 4주일만에 생명을 바쳐야 하는 매미에게 하룻밤 징역도 너무 길다 고 생각되기 때문이다.

“감방에 있으면 바깥에 나올 수 있는 게 한두 번이에요. 그래서 철창 사이로 보이는 곳에 해바라기를 심었어요. 꽃이 안 피니까 잡초하고 똑같았어요. 어떤 날은 누가 잡초인 줄 알고 뽑아놓고… (눈을 크게 뜨며) 내가 고래고래 소리를 질러 뽑은 사람보고 다시 심으라고 했어요. 그렇게 자라다 보니 이게 정상적으로 잘 안 크더라고요. 겨울이 얼마 안 남았는데 꽃이 안 피어 노심초사했는데 한 1m 정도로 자랐어요. ‘빵’에서 나올 때 그 해바라기 씨를 가져와 집에다 심었어요. 그 후손들이 5년 뒤 이사할 때까지 계속 우리집에서 무럭무럭 자랐죠. 그리고 집게사슴벌레 알아요? 그게 막 날면 무섭거든요. 교도관이 ‘에프킬라’로 (기절하는 흉내를 내며) 기절시켜 놨더라고요. 그걸 데려다 사과즙을 먹이면서 여름 내내 살렸어요. 겨울에는 난방을 해 주느라 옷 속에 넣고 다녔고요. 애들이 청승맞다고 난리였어요. ‘네가 빠삐용이냐’면서. ‘그게’(집게사슴벌레) 나랑 6개월을 같이 살다 죽었어요. 감방에서 같이 지냈던 단병호 의원 보좌관이랑 겨울에 꽁꽁 언 땅을 파고 ‘장엄하게’ 묻었어요.” (임지은 월간중앙 기자), 「[인물탐험] 민주노동당 국회의원 노회찬 – 노동자들의 슈바이처, 그 사랑의 줏대」, <월간중앙> 2004년 10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