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ction 3.
정치가 노회찬의 꿈

2000년 1월 30일 민주노동당 창당.
훗날 노회찬은 영화감독 변영주와의 대화에서 민주노동당 창당에 대해 이렇게 소회를 밝힌다(노회 찬.김어준.진중권 외, <진보의 재탄생: 노회찬과의 대화>, 꾸리에, 2010, 129쪽).
“고난의 세월 끝에 당은 창당됐는데, 저는 진심으로 너무 기뻤습니다. 그때 어떤 생각이었냐면, 제 인생의 목표의 반은 이루어졌다, 반이나 이루어졌다. 창당을 한 것만으로도.”

노회찬이 진보정당의 꿈을 포기하지 않고 계속 달려온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노회찬, 「(여는글)우리들의 겨울은 따뜻했다: 다시, 꿈꾸기 위하여」, 노회찬 외, <진보의 재탄생>, 꾸리에, 2010; 노회찬, 「서문」, <노회찬의 약속>, 레디앙, 2010 참조)
“진보정당의 꿈을 놓지 못하는 것은 현실 가능성이 크기 때문도 아니고, 그 꿈이 너무 아름다워 포기하기가 어렵기 때문도 아닙니다. 그 꿈 이외에는 대안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 꿈이 실현되지 않고서는 정치가 사람의 희망이 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노회찬에게 ‘정치’란 어떤 것이었을까? (노회찬, <우리가 꿈꾸는 나라>, 창비, 2018, 86 쪽)
“촛불 이후 시대인 오늘날의 중요한 과제는 공정, 평등, 평화를 우리 사회에 정착시키는 것입니다. 무엇 하나 쉽지 않고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고 했지요. 그렇다면 구체적으로 어떻게 해야 과제를 풀 수 있을까요? 우선, 정치를 바꿔야 합니다. 불공정한 불법 채용도,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불평등함도, 한반도의 평화도, 정치가 움직이면 바꿔낼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민주주의입니다.

한 인터뷰에서 노회찬은 정치를 재인식하는 것의 중요성을 강조한다(노회찬.구영식, <대한민국 진보, 어디로 가는가?>, 비아북, 2014, 179쪽).
“가장 중요한 문제는 정치를 재인식하는 것이다. 현실 정치는 현실의 국민과 소통하고, 그들에게 이해를 구하고, 지지를 얻고, 참여를 도모하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정치를 자기 운동의 관성과 관념을 위한 하나의 수단으로 본다. 정치 그 자체를 중시하는 게 아니라 운동을 통해 다른 어떤 것을 추구하는 경향이 있다.”

정치의 재인식, 특히 선거에 대한 진보진영의 재인식을 강조하면서 노회찬은 이렇게 말한다(노회찬, 「진보정당 건설의 전략과 전망」, <노동사회> 통권 37호, 1999년 10월호).
“보수정당이든 진보정당이든 부르주아 대의체제 하의 모든 정당들은 선거를 통해 평가받고 선거 결과에 따라 영향력의 증대와 쇠퇴를 겪게 된다. 정당인 한 이것은 피할 수도 거역할 수도 없는 현실이다. 선거를 치르면서 반성했고 선거를 통해 성장했다는 것은 지난 20년간 세계에서 가장 주목받는 진보정당으로 성장한 브라질 노동자당의 자기고백이다. 100년을 넘어서는 유럽 진보정당의 역사는 자신들이 취한 정책의 변천과 선거에서 획득한 의석수의 변화를 가장 중요한 대목으로 기술하고 있다.”

“선거를 치르면서 반성했고 선거를 통해 성장했다.” 노회찬은 그에 화답하면서 공직선거에 출마한다. 세상을 바꾸기 위해.

선거 대수 직책 선거구 정당 득표수 득표율 순위 당락 비고
총선
(2004)
17대 국회의원 비례대표 민주노동당 2,774,061 13.03% 비례대표
8번
당선 초선
대선
(2007)
17대 대선후보
당내경선
  민주노동당   권영길(49.37%)
심상정 (26.08%)
노회찬(24.53%)
3위 낙선  
총선
(2008)
18대 국회의원 서울
노원병
진보신당 32,111 40.10% 2위 낙선  
지선
(2010)
민선 5기 시장 서울특별시 진보신당 143,459 3.30% 3위 낙선  
총선
(2012)
19대 국회의원 서울
노원병
통합진보당 52,270 57.20% 1위 당선 재선
재보선
(2014)
  국회의원 서울
동작을
정의당 37,382 48.69% 2위 낙선  
총선
(2016)
20대 국회의원 경남 창원시
성산구
정의당 61,897 51.50% 1위 당선 3선

진보정당 최초의 3선 의원. 17,19,20대 국회 임기 중 실제 의정 활동 7년. 의정활동 7년 동안 127건의 법안 및 결의안 발표.
“현실 정치는 현실의 국민과 소통하고, 그들에게 이해를 구하고, 지지를 얻고, 참여를 도모 하는 것”(대한민국 진보, 어디로 가는가? 비아북, 2017)라며 정치의 역할, 진보정당의 역할, 자신의 역할을 분명히 했던 사람.
“나는 다시 꿈을 꾼다. 대학 서열과 학력 차별이 없고 누구나 원하는 만큼 교육 받을 수 있는 나라, 지방에서 태어나도 그곳에서 교육 받고 취직하고 결혼하고 아이를 낳는 데 아무 불편함이 없는 나라, 비정규직이라는 이유로 차별받지 않는 나라, 인터넷 접속이 국민의 기본권으로 보장되는 나라, 그리고 무엇보다 모든 시민이 악기 하나쯤은 연주할 수 있는 나라. 토머스 모어는 고작 하루 노동시간을 여섯 시간으로 줄여 놓고 그 섬을 존재하지 않는 섬, 유토피아라 불렀지만 나는 그보다 더 거창한 꿈을 꾸지만 단지 꿈이라 여기지 않고 있다.(진보의 재탄생, 꾸리에, 2020)”

노동자의 독자 정치세력화를 꿈꾸며 인민노련을 만들었을 때부터 쭉 그는 한결같은 꿈을 꾸었다. 5번의 공직출마의 선거포스터 속 얼굴처럼. 그는 한결같았다.

노회찬은 5차례 출마한 선거에서 모두 똑같은 사진을 사용했다. 약자를 위한 정치를 표방했던 그의 변치 않는 신념이 포스터에 담긴 듯하다. 왼쪽부터 2008년 제18대 국회의원선거 진보신당 서울 노원병 후보(낙선), 2010년 지방선거 진보신당 서울시장 후보(낙선), 2012년 제19대 국회의원선거 통합진보당 서울 노원병 후보(당선, 2013년 ‘삼성 X파일 떡값검사’ 실명 공개 혐의 의원직 상실), 2014년 7·30 재보궐선거 정의당 서울 동작을 후보(낙선), 2016년 제20 대 국회의원선거 정의당 경남 창원 성산(당선). (「선거 포스터처럼… 한결 같았던 노회찬」, 한국일보, 2018.7.24.)

#1 2004년 17대 총선 (비례대표 후보)

2004년 17대 총선에서 민주노동당 비례대표후보 8번. 2000년 1월 창당한 민주노동당의 두 번째 총선에, 노회찬은 사무총장이자 중앙선거대책본부장으로 선거를 이끌었다.

노회찬은 당 기관지 <진보정치>에 비례대표 후보로서 출사표를 싣는다.

“17대 국회가 소수의 민주노동당 선발대를 보내 막강한 지배계급의 대표선수들과 사생결단의 일대 격전을 벌이는 전쟁터라면 저는 스스로 자원해서 이 선발대에 참여하고자 합니다.”라고 말한다.

국회의원이 되면 실행할 다섯 가지 정책으로,
1. 국가보안법을 반드시 철폐하겠습니다.
2. 비정규 노동자의 정규직 전환을 위해 노력하겠습니다.
3. 자주외교를 실현하겠습니다.
4. 독일식 정당명부비례대표제 등 정치제도 개혁에 앞장서겠습니다.
5. 농촌을 살리고 생태적으로 지속가능한 사회의 전망을 제시하겠습니다.

17대 총선 선거대책위원회가 발족된 2004년 1월 5일부터 3월 31일까지 노회찬은 선대본일기를 썼다. 이 기록을 엮어서 낸 책이 <힘내라 진달래(사회평론, 2004)>이다. 그리고 이 책은 제 13회 전태일문학상 특별상 수상작으로 선정되었다.

2004년 총선 기간 당시 노회찬은 수많은 어록을 남겼다.
“50년 쓰던 고기판에 삼겹살을 구우면 새까매진다. 이젠 판을 갈아야 한다”는 그의 ‘판갈이론’은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최고의 어록 중 하나다.
심야토론(KBS, 2004.4.3.) 말미에 한 “유권자 여러분 행복해지기를 두려워하지 마십시오.”라는 말은 노회찬이 지향한 민중의 삶이 가닿아 있는 곳을 보여준다.

#2 2008년 18대 총선 (노원병 후보)

2008년 3월 16일 진보신당을 창당하고 4월 9일 18대 총선에서 노회찬은 노원병 지역구의 후보로 나섰다.

노회찬은 출마의 변에서 이렇게 말한다.

“민주노동당을 통한 지난 8년의 진보 정치 실험은 실패했습니다. 낡은 운동권 정파의 자기 만족적이고 관성화된 실천을 뛰어넘지 못했습니다. 유능한 진보 정치, 진보하는 진보정치를 국민들에게 보여드리지 못했습니다.  우리는 지금 살을 에는 듯한 그 실패의 아픔을 외면하거나 모른 척하지 않고 오히려 그 아픔을 감싸고 치료해 새 살을 돋게 만들기 위해 진보신당의 창당에 나섰습니다. 누구를 탓하거나 책임을 떠넘기는 것이 아니라 우리 스스로 반성하고 성찰하면서 진보 정치의 새로운 가능성을 만들겠다는 각오와 다짐을 해야 합니다. 그러한 각오와 다짐으로 저는 진보신당 총선 승리의 한 획을 긋기 위해 서울 노원병에 출마하고자 합니다. 2004년 진보 정당 원내 진출의 새 역사를 만들어 낸 것처럼 이번 18대 총선에서 ‘진보 정치 서울에서 원내 진출’이라는 ‘정치혁명’을 만들어 내겠습니다.”

진보정당 첫 원내 진출을 이루었던 민주노동당을 탈당하면서 그 아픔을 삼킨 채, 먼저 반성하고 새로운 각오를 다짐하는 메시지다.

노회찬이 노원병 주민들에게 건낸 구호는 “믿을 수 있는 노회찬”

노회찬은 투표권이 없는 아이들용 명함도 만들었다. “아름다운 하제(내일)를 노회찬이 만들겠습니다”

노회찬은 약자에 대한 배려도 놓치지 않았다. 점자로 만든 명함도 만들었다. “사교육을 조장하는 정치세력에 맞서 공교육의 질 향상으로 사교육비 부담을 줄이겠습니다!”
“환경재앙 불러올 한반도 대운하 추진을 저지해 이명박 정부의 오만과 독선을 견제하겠습니다!”
“부자내각의 부자정치에 맞서는 속 시원한 정치, 유쾌하고 편안한 서민정치의 본보기를 만들겠습 니다!”

생태와 교육, 문화 1번지라는 타이틀로 유권자들에게 민생과 관련한 약속을 했습니다.
학력차별을 줄여나가고, 지옥 같은 입시 제도를 바꾸겠습니다! 교육비 부담을 대폭 줄이고 교육환경을 개선하겠습니다!
생태 교육 문화 1번지
실속 있게 민생을 챙기는 민생경제 119, 노회찬
– 통신비, 기름값 인하
– 신용카드 가맹점 수수료 인하법 제정
– 노인, 장애인 등 교통이용 약자의 교통편의 확대 – 청년 실업자에게 ‘힘내라! 실업수당’ 지원
– 시중은행의 대출금리 폭리 근절
– 대기업의 횡포로부터 중소기업 보호
득표율 40.05퍼센트. 43.1 퍼센트를 득표한 홍정욱 후보에게 밀려 낙선했지만 진보 정당 후보로서 서울에서 선전하며 진보 정당의 가능성을 보여주었다는 평가를 받았고 이후 노회찬의 패배를 아쉬워하는 당원의 증가도 이어졌다. (<노회찬, 함께 꾸는 꿈>, 후마니타스, 2019)

#3 2010년 제5회 전국동시지방선거 (서울시장 후보)

2010년 1월 31일 노회찬은 ‘2010년 지방선거’ 출마 후보를 결정하는 진보신당 서울시당 후보 선출 대회에서 서울시장 후보로 선출되었다. 그는 “아이와 엄마가 행복한 서울”을 모토로 콘크리트 서울이 아닌, 보편적인 복지 정책을 펼치는 도시를 만들자는 메시지를 던졌다.

“아이와 엄마가 행복한 서울”
“콘크리트는 이제 그만! 더 많은 복지, 더 좋은 일자리로”

“서울 시민 여러분, 모든 사람은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행복을 추구하며 살아갑니다. 그러나 지금까지 우리 국민들은 물론 서울 시민들 삶의 대부분은 생존을 위한 삶이었습니다. 그 어떤 정치 세력도 국민과 서울 시민들의 삶을 질적으로 변화시키지 못했습니다. 이제 그 변화의 방향은 ‘요람에서 무덤까지 불안하지 않은 삶’이어야 합니다. 저는 그런 점에서 ‘요람에서 무덤까지’ 서울 시민들의 생애 주기에 맞추어 다음과 같은 ‘서울의 일곱 가지 행복한 변화’를 만들고자 합니다.(2009년 11월 29일, 서울시장 후보 출마 선언문 중”
대한민국을 바꿀 서울시장 복지혁명! 노회찬 7대 공약
– 교육: 핀란드형 혁신학교, 친환경 무상급식
– 고용: 비정규직은 그만, 질좋은 정규직으로!
– 생태: 4대강 한강운하 반대, 한강백사장 복원
– 주거: 반값 전세아파트/  임대주택 10만호 공급
– 보육: 무상보육, 집 앞에 구립어린이집 확충
– IT : 공공장소부터 무선인터넷 무상 제공
– 노사 : 비정규 여성 장애 차별 않는 기업우대제

#4 2012년 19대 총선 (노원병 후보)

노회찬은 2012년 4번째 공직선거에 나선다. 노원구병 지역구의 통합진보당 후보로 나서게 된 것이다. 2011년 12월 6일 민주노동당과 국민참여당, 새진보통합연대 등이 통합해 창당한 통합진보당은 19대 총선에서 비례대표 6명, 지역구 의원 7명을 당선시켰다.
노회찬은 예의 그 같은 얼굴로 명함을 제작한다. “엄마와 아이가 행복한 대한민국”
생태. 교육. 문화. 복지, 노원이 바뀝니다
– 창동차량기지와 도봉면허시험장을 한국형 밀레니엄파크로!
– 노회찬의 복지는 가족중심, 생활중심입니다.
– 혁신학교 중.고교까지 확대 / 학교폭력 해결 대책 마련
– 상계동 뉴타운 문제, 주민 뜻 반영!
– 노원구 재정자립도와 주민생활 개선
– 수락산 둘레길, 2013년까지 완성
99% 국민이 잘 살도록, 대한민국이 바뀝니다.
– 1%부자, 대기업 증세!
– 경제민주화
– 복지국가실현
– 정치개혁
2012년 4월 20일 비례대표 경선을 둘러싼 부정선거 의혹이 제기되었고, 5월 2일 당 비례대표 경선 진상조사위는 “비례대표 경선에 총체적 부실”이 있었음을 발표했다. 이후 이 문제를 둘러싼 갈등의 결과 같은 해 9월 유시민, 심상정, 노회찬 등 국민참여계와 진보신당계는 통합진보당을 탈당하고 진보정의당을 창당한다.

#5 2014년 19대 재보궐선거 (동작을 후보)

노회찬은 2012년 19대 총선에서 당선되었지만
“도둑이야” 소리쳤는데 도둑은 안 잡고 소리친 사람에게만 죄를 물은 ‘사법 살인’으로 2013년 2월 14일 국회의원직을 상실했다.
그리고 2014년 7.30 재보궐 선거에 동작을 후보로 출마하게 된다.

“국민 여러분 그리고 동작 주민 여러분!
이번 7.30 재보궐선거는 새누리당과 새정치민주연합 양당이 하는 ‘6.4 지방선거의 연장전’이 아닙니다. 또한 ‘새누리 과반 의석 확보’나 ‘새정치민주연합에 의한 그것의 저지’라는 식으로 이번 선거의 의미가 호도되어서도 안 됩니다. 집권 여당과 제1야당의 ‘적대적 공생 정치’가 정치와 국민들 사이를 더 멀게 하는 잘못된 현실이 가려지기 때문입니다……
제가 10년 전에 “50년 된 불판을 갈아야 한다”고 했을 때 국민 여러분들께서 진보 정당 국회의원을 열 명 당선시켜 주셨듯이, 이번 7.30 재보궐선거에서 오만한 새누리당과 무기력한 제1야당인 새정치민주연합 모두를 ‘환골탈태’시키는 ‘정치 판갈이’를 할 수 있도록 저를 당선시켜 주십시오. 대한민국 정치의 혁신을 위해 ‘노회찬이 있는 국회’를 만들어주십시오……(2014.7.8. 출마 기자회견문 중)

“저는 패배했습니다. 그러나 이기고 싶어 하는 국민들은 아직 패배하지 않았습니 다. 아마도 우리 국민들은 이번 선거결과를 보고서 더욱더 이겨야 한다는 다짐을 하고 있다고 저는 보고 있습니다. 동작구 을에서 정말 죄송스럽게도 패배했지만 우리 국민들이 끝내 이기는 그날까지 저 역시 굽히지 않고 나아가겠습니다. 비록 이곳 전투에서는 졌지만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국민들이 승리하는 그날까지 정의당은 함께할 것입니다.(재보궐 낙선 인사 중에서)”

#6 2016년 20대 총선 (창원성산 후보)

2016년 4월 13일 총선에서 노회찬은 정의당 창원성산 지역구 후보로 출마했다.

“오늘 새벽 첫 열차를 타고 창원으로 향해 오면서 온갖 상념들이 주마등처럼 머리를 스쳤습니다. 저의 생애 첫 직업은 전기용접사였습니다. 산업용 보일러를 만드는 회사에서 일당 5천 원을 받는 용접공으로 사회에 첫걸음을 내딛었습니다. 노동법이 무시되고 인간 이하의 대접이 강요되던 현실을 고쳐 보려고 전기용접 2급 기능사 자격을 취득하고 노동 현장에 투신한 것입니다. 그 대가는 3년에 가까운 옥중 생활이었지만 한 번도 이를 후회한 적이 없습니다. 그 후 10년에 걸친 천신만고 끝에 진보정당을 만든 것도, 두 차례나 국회의원이 된 것도, 국회의원직 박탈을 두려워하지 않고 삼성 엑스파일을 공개한 것도, 평생 한 우물만 판 것도 모두 한 가지 목표, 땀 흘려 일하는 사람들이 인간다운 대접을 받는 사회를 만들려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고향이 어디냐는 물음에 이렇게 대답합니다. “ ‘노동자 서민의 땀과 눈물과 애환이 서려 있는 곳, 그곳이 나의 고향입니다.’” (2016년 2월 1일 20대 총선 창원 출마 기자회견문)

창원과 대한민국을 위해 크게 써 주십시오
<노동>
‘노동 개악’ 저지! ‘노동권’ 강화!
노조와 합의 등 정리해고 절차 및 요건 강화!
대량해고시 ‘노동자 전직지원계획’ 의무화!
비정규직 사용 제한, 파견법 단계적 폐지!
공공부문/대기업부터 비정규직 정규직 전환!
파업에 대한 손배·가압류 금지!
<도시가스 요금부담 인하>
도시가스요금 창원이 서울보다 연간 46,000원 더 비싸다
가스레인지 연결비 서울은 0원, 창원은 17,000원